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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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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러시아] 서지연   조회수 943
제목 러시아의 아름다운 한국인 3: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에 박경리 강좌를 개설한 최인나 교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이하 상트국립대)에서 박경리 선생님과 최인나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왕복 2,600km 길을 떠났다. 박경리 선생님(1926-2008)은 대한민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사회와 현실을 비판하고 인간성과 생명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으며, 특히 26년에 걸쳐 완성한 대표작 『토지』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 KRD) 문화예술분과'에서 2017년 러시아어와 한국어로 출간한 [박경리의 삶과 작품: 박경리, 넓고 깊은 바다처럼]에 선생님의 살아생전 모습이 담겨있다. 박경리 기념관 뜰에 세워져 있는 바로 그 동상이 먼 타국 러시아 상트국립대 조각 공원에 있다. 2010년 한러수교 20주년을 기념해서 출범한 '한러대화'는 당시 양국 정상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현재는 민간 활동 위주의 채널로 자리 잡았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한 교류를 통해 한러 양국의 공공외교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러대화 사무국은 상트국립대에 있으며 최인나 교수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과를 졸업한 제자 2명과 열정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사전에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다.


▲ 상트국립대 안에 위치한 한러대화 사무실. 한국과 러시아 학자들로 구성된 한러대화는 양국 공공외교에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러대화 포럼 차원에서 한국과 러시아 무비자 입국 사안이 이슈화되었고 그 결과로 2014년 1월 1일 양국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었다. 한러대화의 추진으로 2013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 러시아 작가 푸쉬킨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2018년에는 상트국립대 교정 현대조각공원에 박경리 작가 동상이 세워졌다. 러시아의 아름다운 한국인 세 번째 인물 최인나 교수는 이 모든 역사적 사건의 가장 중심에서 한러 관계에 다리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토지』를 처음 읽었다. 그해 여름방학 서울시에서 주최한 '청소년 독서 교실'에 학교 대표로 참석했다. 각 고등학교에서 온 30여 명의 청소년은 서울 사직공원 도서관에 모여서 한 달 내내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책만 읽었다. 책 한 권을 완독하면 독후감을 써야 하는 게 주요 임무였다. 세상 모든 책을 다 품고있는 듯, 거대한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책이 바로 『토지』였다. 방대한 분량에 쉽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한 달, 도전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가계도를 그리며 책을 읽어야 했다. 박경리 작가는 26년에 걸쳐 675명의 다양한 인물을 토지 속에 담았다. 17세 소녀의 여름 방학은 토지로 시작해 토지로 끝났다.


개학을 했다.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들었다. 강당 맨 끝에서 친구들과 오랜만에 수다로 회포를 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주변 친구들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교장 선생님이 부르신단다. 얼떨결에 단상으로 올라갔다. 낭독하시는 상장에는 '박경리 토지 독후감을 훌륭하게 작성했기에 이에 상을 수여한다.' 대략 그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강당에 모인 전교생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생생히 기억하는 것을 보니 그 박수가 생애 큰 격려가 되었나 보다.


34년 세월이 흘렀다. 2022년 11월 22일 폭설이 내리던 날, 토지』로 상을 받은 한국 땅이 아닌 이제는 두 번째 고향이 된 러시아 땅에서 17세 소녀를 격려했던 토지 작가 박경리 선생님을 뵙기 위해 20시간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 바로네즈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편도 1,300km 거리다. 비행편이 있지만 2월 24일 이후 모든 운항이 중단된 상태다. 어떤 열정이 2,600km를 달리게 했을까. 스스로 신기하다. 보통 장거리 여행에는 침대가 딸린 기차를 이용한다. 저녁 5시 41분에 바로네즈를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 그다음 날 오후 13:01에 상트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 한국 '도시락'을 판다. 차장에게 한국 음식이라고 하니 놀란다. 라면이 선사하는 뿌듯함이 제법 크다. 눈에 폭덮힌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기차 안에서 먹는 도시락은 꿀맛이었다. 기차 밖은 풍경이 아니라 그림이다. 세상에서 제일 긴 수묵화를 자연이 그렸다. 눈을 따라 계속 달린 끝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다. 기차역 내부 가장 중앙에는 표트르 1세 동상이 있다. 표트르 1세는 이 도시를 '유럽의 창'으로 만든 왕이다. 상트 곳곳에 표트르 1세 흔적이 가득했다.


▲ 상트국립대 한국학과 수업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을 청강한 후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대화하기 위해 대학 근처 카페에 왔다. 최인나 교수 단골 카페다. 카페 입구에 키가 2m가 넘었다는 표트르 1세 동상이 서 있다. 카페 이름도 그분 이름이다. 그동안 이메일과 전화로만 소통하다가 생애 처음 만난 최인나 교수님은 이상할 정도로 전혀 낯설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니 '제가 연극을 좀 잘해요.' 농담으로 응답한다. 러시아에서 만난 분들 중에 한국어를 제일 잘한다. 인생 대화를 통해 어릴 때부터 배운 한국어가 아니라 상트국립대 당시 한국어문학과로 진로를 정한 후에 배운 한국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최인나 교수는 러시아에서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러시아인답고 동시에 가장 한국인다운 사람이다. 식사하면서 가볍게 정체성에 대해 질문했다. 최인나 교수에 관한 한국 기사에는 최인나 교수가 상트국립대 한국학과와 한러대화를 통해 수행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한국 핏줄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대답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최인나 교수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한국인과 러시아인을 포함한 세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И почему столь яркими для нас становятся и радость, и печаль?


상트국립대 캠퍼스 안에 있는 현대조각공원에 세워진 동상 앞면에는 박경리 선생님의 시 '삶'의 마지막 구절이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새겨져 있다. 2018년 6월 20일 박경리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전신 높이 135cm 동상 제막식에 든 시간은 30분 남짓이었지만, 박경리 선생님 동상이 이 자리에 세워지기까지 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러시아 작가 동맹이 2012년 한러대화 사무국장이었던 고려대학교 허승철 교수에게 서울에 푸쉬킨 동상을 세우자고 제안했고 이것은 2013년 11월 러시아 대통령 방한에 맞춰 실현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러 양측이 2014년에 상트국립대에 한국 문인의 동상을 세우기로 합의한 후에 박경리 선생님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동상도 서울대 조소과 권대훈 교수에 의해 그 해 제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영원히 구조물로 남는 동상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다. 박경리 선생님 작품이나 개인에 대한 러시아어 자료가 너무 없다는 것이 동상 건립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2018년 6월 28일 동아일보 기사 참조]


그 당시 한러대화 사무국장이었던 최인나 교수는 상트국립대 동양학부 한국학과에 2017년 상반기에 학부 3학년이 수강하는 '박경리의 생애와 문학' 강의를 개설했다. "선생님의 동상도 세우기로 했는데 학생들이 그분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측에서도 흔쾌히 강의 개설을 허락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 상트국립대 학생들은 박경리 작가를 모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최인나 교수는 철학, 문학, 수업을 포함한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박경리 작가를 소개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박경리 작가 관련된 연구 자료를 러시아 모든 대학에 보냈고 이를 계기로 박경리 작가의 대표작 『토지』가 번역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이미 토지 1권, 2권이 러시아어로 출간되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한국인, 한국학과 최인나 교수 인터뷰



[질문 1]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인 소개와 재직 중이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학과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변 1] 저는 1998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최인나 발레리안토브나입니다. 저는 1992년 이 대학에 입학했고, 1997년에 졸업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5년제 교육 제도가 있었습니다. 졸업 후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동시에 조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논문의 주제는 한국 작가 김동인의 작품입니다. 저는 김동인 작품에서 전통적 요소와 새로운 요소를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한국학과는 2017년에 설립되었습니다. 2017년까지는 서로 다른 강좌에 속해 있던 2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어문학과는 중국, 한국, 동남아 어문학과 소속이었고, 한국역사학과는 극동역사학과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학 역사는 훨씬 이전인 1897년 최초의 한국어 교사 김병옥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일하면서 최초의 한국어 교과서를 집필한 이래로 시작됩니다. 현재 이 교과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양학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한국과 러시아 모든 학자에게 큰 가치가 있습니다. 올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학이 대학 내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지 125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우리가 배운 지식을 지금까지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전달할 수 있는 이유는 저희의 스승이신 러시아 1, 2세대 학자분들 덕분입니다.


제 전문 분야를 사랑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고 반성하도록 가르쳐주신 스승님들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저는 현재 93세인 제 스승이신 아델라이다 표도로브나 트로트세비치 교수님과 계속 소통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지금까지도 계속 책을 읽고 번역하십니다. 교수님 열정과 노력 덕분에 한국 전통 문학을 비롯한 고전소설에 대한 많은 연구 저서들이 출판되었습니다.


▲ 상트국립대 동양학부 정경, 대학교 바로 앞에는 상트 상징인 네바강이 흐른다. 한국학과가 있는 건물 안에는 주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 Korea Foundation(KF),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의 협력으로 문을 연 '코리아 코너' 강의실이 있다. 상트국립대 내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 상트에 도착하자마자 최인나 교수님 수업에 참석했다.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 중에 시를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는 3학년 학생들은 한국인인 나보다 더 박경리 선생님의 삶과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상트에서 만난 박경리 선생님의 모든 것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을 이렇게 먼 러시아에서 가르치고 있는 최인나 교수님의 모든 것이 감동이었다. '코리아 코너' 강의실 내부를 꼭 봐야 한다며 초대하신다. 문을 여는 순간, 한국이다.


현재, 한국학과에는 7명의 교수님이 계십니다. 세르게이 올레고비치 쿠르바노프 교수님은 러시아 내외에 유명한 한국사 전문가이시며 현재 학과장이십니다. 정양옥 교수님은 한국인 원어민이시고, '창작 춤' 교실도 운영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나스타시야 알렉산드로브나 구리예바 부교수님은 한국 전통 시와 현대 시 전문가입니다. 젊은 교수님들이신 니나 빅토로바 핀코, 예카테리나 콘스탄티노브나 벨라야, 나딸리야 알렉세예브나 토카레바는 재능있고 열정적인 저의 동료들입니다. 이분들은 모두 한국어에 능통하며, 한국을 사랑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지식을 학생들과 나눕니다. 또한 모든 교수님은 학문적인 연구와 더불어 교육 활동에 참여합니다. 상트국립대 교과 과목은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 민속, 문학, 지리, 문화도 공부합니다. 즉, 학생들은 이곳에서 총체적인 학문을 배우면서 지식을 습득합니다. 입학하는 첫해부터 학생들은 학문을 배우는 자세로 공부해야 하며, 학술적인 텍스트를 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 한국학과 강의실에서 최인나 교수에게 '박경리의 삶과 작품' 강의를 듣고 있는 3학년 학생들.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번역된 박경리 작가의 시 5편을 읽고, 번역하고 영상을 통해 한국 성우 목소리로 듣는 수업이다. 일부 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품이다. 눈물이 났다. 모든 시에 박경리 선생님 삶과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다. 뜻밖에 러시아 국립대학교 강의실에서 한국에서도 미처 만나보지 못했던 박경리 선생님 작품을 만났다.


▲ 박경리 선생님의 '일 잘하는 사내'는 거친 풍파를 헤쳐온 삶에 대한 아픔을 진솔하게 토로한 시다.


[질문 2] 대학 전공으로 한국학과를 선택하고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변 2] 저의 어머니는 의사입니다. 과거에는 자녀들이 부모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는 통념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고 의대에 지원하기 위해 화학과 생물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 9월 30일 소련과 한국이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러 수교 이후, 처음으로 한국 유학생들이 러시아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 학생 중 한 명을 만났는데, 그 학생은 대학교 기숙사에 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국 학생은 하숙을 할 수 있는 집을 찾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를 돕기로 했습니다. 서로 상황이 잘 맞아서 우리 가족은 그 한국 유학생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10학년(고등학교 2학년 개념)이었습니다. 당시 내 친구들은 모두 러시아인이었고, 내가 한국 피를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한국어로 말했고 나는 이해하기는 했지만, 러시아어로만 대답을 했습니다.


▲ 지난 10월 21일 한러대화와 토지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한러대화 제4회 박경리 문학제 - 대지와 생명의 문학]이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최인나 교수를 비롯 상트국립대 N.M.크로파체프 총장, 주한 러시아대사 A.B. 쿨릭, 한러대화 러시아 측 문화예술분과위원장 V.G. 그론스키, 상트국립대 조교수 A.A. 구리예바 등이 주제 발표를 했다. 한국에서는 주러 대한민국 장호진 대사와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께서 축사했다. 김연숙 경희대 교수와 박은정 한국외대 교수, 최유희 중앙대 교수께서 주제 발표를 했다.


우리 가족이 한국 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한국 유학생들이 자주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저를 따뜻하고 매너 있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들과 자주 만나서 교제하고 소통하면서 나는 한국학과에 입학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같이 입학한 친구들이 한국학과에 지원한 동기는 대부분 학창 시절부터 동양과 그 문화,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인데, 저의 입학 동기는 전적으로 인적 요인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1992년에 상트국립대에 입학했고 그때부터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가족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했고 그래서 한국어가 더 모국어같이 편한지 나에게 질문합니다. 아닙니다. 부모님은 1970년대에 중앙아시아에서 레닌그라드로 이주하셨고 한국말을 전혀 못 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이 한국 유학생과 같이 살면서 소통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한국 사업가들과 만나면서 부모님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십니다. 상트국립대에 입학한 후에 저는 모두와 동등한 입장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머니께서는 내가 더 이상 의사의 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런 선택을 한 또 다른 이유는 대입 준비를 하면서 의학 분야가 저의 적성에 전혀 맞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도 저의 선택을 존중해주셨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 전공을 선택한 덕분에 언어, 문학, 삶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사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아주 큰 기쁨입니다.


[질문 3] 1997년부터 현재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학과에 재직 중이십니다. 학생들이 한국학과를 선택하는 이유와 또 학생들 한국 사랑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3] 제 경험으로는 입학 연도에 따라 학생들이 한국학과에 진학하는 이유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약 15년 전에는 교수님들이 첫 만남에서 입학 동기에 관한 질문을 하면 많은 지원자는 학창 시절부터 동양, 역사 및 문화, 특히 중국, 일본, 한국 같은 나라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현대 문화의 인기, 특히 K-pop, TV 쇼, 영화, 드라마 덕분에 많은 지원자가 상트국립대 한국학과에 지원합니다. 우리는 한국인들에게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은 부드러움과 강함이 잘 결합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훌륭한 전략을 통해 음악 및 영화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한국 문화는 지금 거의 전 세계에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타문화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타문화에 대해 적대적이고 편협한 태도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K-pop에 의해서만 동기 부여받아 입학한 학생들이 막상 상트국립대 한국학과에 입학하면 여러 가지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열정과 재미로 이 학과를 선택했지만, 현실적으로 학문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음성학, 문법 및 기타 학문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훈련하고 학문적인 연구를 해야 하고 모든 학문 분야에 몰두해야 합니다. 한국학과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합니다. 특히, 현대 문화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물 아래에는 거대한 전통 문화층이 있으며 이 층을 극복해야 비로소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질문 4] 국립대 교정에 있는 박경리 선생님 동상을 보고 뭉클했습니다. 동상 건립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역사와 과정을 다 지켜보시고 직접 앞장서서 활동하시면서 느꼈던 감동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4] 러시아에 박경리 기념비가 세워지기 몇 년 전인 2015년 5월 박경리 작가의 딸 김영주 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한국 동료들과 작가 추모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통영에 갔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완전히 낯선 사람인 제가 박경리 작가의 무덤 앞에서 절을 했습니다. 저에게 감사한 경험입니다. 2013년 서울에서 러시아와 한국 동료들의 노력과 한러대화의 준비 작업 덕분에 롯데호텔 앞에 알렉산드르 푸쉬킨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이날 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장님을 비롯한 내빈들과 함께 그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러대화에서 일하고 있지 않았고 러시아 대표단의 통역관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모든 기념식이 끝난 후 저녁에 만찬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러시아 측이 한국의 친절에 화답하기 위해서 한국 작가나 시인의 기념비를 세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 2017년 한러대화가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출간한 [박경리의 삶과 작품 - 넓고 깊은 바다처럼]


이 제안 후에 한국인 동료들은 여론 조사를 실시했고 한러대화 측에 서신을 보내 거의 모든 한국인이 작가 박경리를 선택했다고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에서는 한국 작가 박경리에 대해서 한국 문학 전문가들 외에 일반 러시아 독자들은 거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념비 제막식 준비 작업과 병행하여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작가 박경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학술 세미나 및 기타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박경리의 삶과 작품'에 관한 두 개의 특별 선택 강의가 개설되었습니다. 또한, 박경리 작가의 많은 시들과 소설 『토지』 1, 2권이 번역되었으며 한국 문학 전문가들이 다양한 콘퍼런스에서 박경리 작가의 작품에 대해 활발하게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 한러대화를 주축으로 박경리 작가에 대한 연구와 학술 세미나는 계속되고 있다. 2017년 이후 한국 문학가 박경리는 러시아에서 활발하게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2022년 10월 21일 한러대화 제4회 박경리 문학제에서 러시아국립인문대 동양어학부 조교수인 M.V.솔다토바는 [박경리와 미하일 숄로호프의 창작에서 '대지'의 형상]이란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러시아 작가와 한국 작가 박경리의 문학 세계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통찰력을 준 강의였다. 박경리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적과 동지 - 복수와 용서의 공존' 현재 러시아 땅에 사는 우리에게 박경리 작품이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이유다. 동료들을 높이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학생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학문적 열정 그리고 세계인의 정체성으로 조합과 화합을 이루는 최인나 교수는 러시아의 아름다운 한국인이다. 지난 시간 최인나 교수가 한러 문학적 교류를 위해 애써온 모든 활동과 업적 그리고 열정에 깊은 경외를 표한다.


돌아보면, 2013년부터 시작된 기념비 사업이 실제로 상트국립대에서 제막식을 하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든 준비 과정에서 법적, 기술적인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2018년 6월 20일 여름 드디어 기념물에서 몇 년간 덮여 있던 천이 제거되면서 이러한 모든 어려움은 즉시 잊혀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뭉클한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는 해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동료들과 함께. 이 과정에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현대조각공원을 거닐며 박경리 선생님에게 인사를 합니다. 박경리 작가는 고민과 슬픔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박경리 선생님은 사랑이 많은 한국 할머니입니다.


문필가

-박경리 (1926-2008)

붓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 사진 출처: 최인나 교수 제공, 통신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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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개

   서지연  (2023-01-25 08:44:10)  

좋은 분을 만난 덕분에 왕복 40시간이 전혀 멀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최인나 교수님은 문학적 소통을 통해 러시아와 한국을 연결하는 러시아의 아름다운 한국인입니다. 고려문화교실과 손소미아 선생님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손소미아  (2023-01-17 14:46:11)  

최인나 교수님! 글로 만나뵈니 더 반갑습니다. 진정한 러시아의 아름다운 한국인이십니다.
러시아의 아름다운 한국인시리즈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고려문화교실  (2022-12-23 18:1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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